친구와 필리핀으로 첫 여행을 떠날 땐 내겐 사실 별 계획이 없었다. 필리핀에서 무얼할까가 아닌, 한 해동안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없이 쉬고만 싶었을 뿐이었는데 이왕 온김에 그래도 이것저것 하게되고 스노클링도 했더랬다.
마닐라에서 몇 시간 떨어진 곳에 사방(SABANG)이라는 작은 항구마을이 있는데 사방비치를 거닐다보면 작은 배를 가진 선주들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한다. 주로 근처 다른 해변으로 실어다 주거나 다른 섬으로 이동이나 스노클링등 해양스포츠를 할 수 있다며 사진이 그려진 안내판을 들이밀며 쫒아온다.
스노클링을 하려던 날도 그렇게 돈을 주고 이용하려 했는데 숙소에서 함께 점심을 먹던 다이빙 강사님이 숙소 바로앞바다에서 하면 되지 뭘 또 거기까지 가서 돈을 내냐했다. 숙소 앞 해변은 넓진않고 사방과는 거리가 떨어져있어서 사람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걸어들어가면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곳이었더랬다.
밖에서 볼 땐 만만해 보이는 게 바다인지라 혼자서라도 수경을 끼고 들어갈까 싶었는데 이날 친구가 오후 다이빙을 끝내고 야간 다이빙가기 전에 들어와 잠시 쉴때 함께 가기로 했다. 나중에 느끼게 되지만 혼자서 그 바다에 들어가기엔 안전문제가 있다. 짝과 함께 즐기는 버디시스템은 중요한 것이다.
사방 근처 숙소 앞 해변
우리가 스노클링을 했던 해변은 푸에르토 갈레라 지역의 마코 후미(Markoe Cove)라는 작은 만인데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는 아래위치정도에서 했다.
숙소앞 해변 바다는 멀리서 얼핏 보았을 때 어두운 색이었는데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나 부유물이 밀려와 어두운색인줄 알았는데 그곳의 산호초 색이 그랬던거였을 뿐이었다.
사방비치 근처로 오기 바로 전 앞서 잠시 들렀던 마닐라 시내의 바닷가를 가보았을 때 떠밀려온 쓰레기와 악취를 경험 했던터라 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숙소 앞 해변의 바다는 종아리까지 밖에 안차는 얕은 물에서 부터 산호초 군락지가 펼쳐져있어서 해변근처의 바닷물이 어두워 보였던 것 뿐이었다. 좀 더 먼바다엔 그냥 밝은 푸른색이다. 멀리서 볼 땐 청량한 푸른 바다에서 해변가를 따라서만 빽빽히 거무스름한 바닷색이니 그런 오해가 있을 만하다.
전날 숙소와는 좀 떨어진 사방비치(필리핀 SABANG의 해변)에서의 낚시여행에서도 낚시배를 타기위해 걸어 들어간 일이 있었는데 그 곳은 해변 앞에 산호초 군락이 아닌 해초로 뒤덮힌 곳이다. 그곳과는 또 다른 점이기도 했다. 사방은 나름 그지역에 붐비는 어촌 상업지구이기도해서 물가에선 냄새도 좀 난다.
숙소 앞 바다에서는 물에 들어서서 몇 걸음 걷자마자 산호초가 밟히니 맨발로 들어가면 아프다. 그래서 오리발(핀)을 신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오리발은 걷기엔 부자연스럽고 힘든탓에 그냥 부츠만 신고걷다가 적당히 깊어졌을 때 오리발을 덧신는 것으로 그 불편을 없앴는데, 우리가 가진 오리발의 종류가 발을 넣는 부분인 풋 포켓이 신발을 신은 채 넣고 스트랩으로 조이는 오픈힐로 되어있는 것이라서 더 쉬워지는 장점이기도 했다.
얕은 바다의 산호 군락지
물이 무릎까지 차기도 전에 이미 산호가 밟히기 시작했다. 먼저 앞서던 친구녀석이 오리발을 신으며 나를 향해 이 것들 좀 보라고 아우성이었다.
얕은 바다에 서서 허리를 굽혀 물에 얼굴을 처박고있는 그 모습이 내겐 좀 웃겼다. 그리고 나 또한 기꺼이 (내가 바라건데) 한마리 홍학이 되어 얼굴을 무릎 아래로 숙였다.
진한 형형색색의 아주 예쁜 산호는 아니었지만 가지각색의 모양과 크기로 이루어진 해변의 산호도 충분히 관심받을 만큼 예뻤다.
산호는 이질적인 기형을 가졌으면서도 나름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를 거니는 작은 물고기들의 입장처럼 만일 우리 앞에 그 정도 크기로 나타난다면 웅장함과 경외심이 절로 생길 것같다.
예쁜 산호 사이에 눈에 띈 건 다름아닌 검은색 가시가 달린 성게였다. 예전에 태국 여행을 갔을 때 처음 이 성게에대한 위험성에대해 경고를 접했는데 이렇게 산호초 사이사이에 숨어서 내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걸 보니 다시 상기하게된다. 오줌은 비상시를 위해 참고 있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리발과 부츠덕에 성게를 직접 밟을 일은 없었지만 워낙 얕은 물이다보니 넘어져 손을 집게될 때 성게에 찔릴 수도 있다. 성게가 많은 것은 아니라서 확률은 낮겠지만 역시 넘어지면 그냥 딱딱한 산호초와 바위만으로도 아프다.
이렇게 얕은 바다에서 발 딛을 틈도 없이 펼쳐진 산호 군락지에서는 스노클링 중 발을 보호할 수 있는 아쿠아 슈즈, 부츠나 오리발은 필수다.
그리고 파도가 심하다면 균형잡기도 힘드니 맑은날 외엔 들어가지 않는게 좋겠다. 파도가 치는 날엔 바다의 시계(보이는 정도)도 사실 좋진 않아 물고기 구경도 어렵다. 친구와 스노클링을 했던 그날 역시 해변가 바다속 시야가 몇미터 보이지 않았던 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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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바다 스노클링 적응기
친구의 수영능력은 섬에서 섬으로 다니는 돌고래 같을만큼 잘한다. 그래서 그런 친구와 함께 물에 들어간다는 것만큼 든든한 것도 없다.
친구가 생각하는 나의 수영능력은 내버려둬도 죽진않을 만큼은 한다는 걸로 생각하나보다. 실제 나는 저질체력이 금방 고갈되어 당황하면 물을 먹는다. 나는 이날 발딛을 틈없는 산호초로 깔린 새로운 바다에 적응하느라 입수 후 초반에 애를 먹었더랬다.
친구는 내 걱정은 하지도 않고 물고기 구경하느라 바쁜듯보였다. 이따금 물에서 고개를 내밀곤 ‘야 이거봐봐 여기 많다’, ‘빨리 일로와’ 재촉하기만 할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파도가 넘실되는 바다 수영은 힘들다. 단지 염분때문에 대충 눕거나 엎드리면 아무것도 안해도 몸이 떠있을 수 있다는 점이 수영장이나 민물수영보다 편한점이다.
고향근처가 바닷가라서 나도 바다에서 수영을 안해보고 산 건 아니지만 그 해변에선 몸을 세우기엔 너무 얕은 곳에 산호초와 바위가 깔려있어 버둥되면 다 긁힌다.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려니 몸을 세워야겠는데 날카로운 바닥이 다리에 걸렸다. 최소한 무릎을 접어서라도 뜰 수 있는 깊이는 되어야했다.
오리발은 또 왜이리 걸리적 거리는지 .몸을 활처럼 뒤로 꺾어서야 고개를 수면밖으로 겨우내밀수 있었다. 그쯤되면 사력을 다해 팔을 허우적 거리다 물을 먹게된다.
내 오리발에 걸린 산호초와 바닥 흙먼지로 내 주변은 벌써 시계가 엉망이되었는데 그 모습을 본 친구가 산호초 아깝다고 부수지 말라며 핀잔이다.
‘야이 자식아 내 목숨부터 살아야 자연보호도 할 꺼아니냐~’
물론 물고기 스노클링을 포기하고 배영자세로 누우면 숨도쉬고 하늘도보고 죽기까진 하지않으리라. 하지만 그러자고 이곳에 들어온건 아니었기에 나름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다.
이런 꼴사나운 사투를 벌인덴 나름 이유가 있었는데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에서 스노클링 호흡법이 내게 익숙치 않아서였다. 난 운동에서 기본이 안된놈이라 뭐든 실제 경험하며 나름의 요령을 먼저 익히는 편이다.
스노클링 중에 물고기 구경한다고 조금만 깊이 머리를 숙이면 스노클까지 물에 잠기기 일쑤고 생각없이 호흡하면 물이 들어어니 물을 빼주기위해 “퉤!” 하고 일순간 힘차게 숨을 뱉어야하하는데 이게 들이쉬어야 할 타이밍에 물이 차있으면 폐에 남아있는 공기가 없어서 아예 내쉴 수가 없으니 물 뺄 방법도, 숨 쉴 방법도 없다. 그러다보니 입을 수면밖으로 내밀어보겠다고 그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비단 호흡문제뿐만아니라 수경에 물이 들어와 바닷물이 눈을 찌르는 문제도 있었다. 수경에 연결된 스노클을 자꾸 입에서 뺐다 넣었다하며 움직이다보면 수경의 안면 압착이 허술해지는건 당연지사, 틈사이가 벌어져 눈 앞에 물이 차게된다. 그러면 수경을 벗고 다시 정리해주느라 또다시 버둥거리게 되었다. 잠수한 채로 수경 속 물을 빼는 방법도 친구가 이날 알려줬다. 코까지 덮는 수경이 이럴 땐 편리하구나.
제일먼저 찾은 요령은 좀 더 깊은곳으로 가는 거였다. 물이 깊어 발이 안 걸리니 몸을 세우기 편해 수경과 스노클을 정리하려다 산호초에 걸려 당황스러운 상황은 잘 없게되었다.
나름 요령을 찾게되면서 호흡도 안정적이었고 폐에 숨을 남겨놓고 옅게 쉬었더니 스노클에 들어찬 물을 못빼는 상황도 잘 없게되었다.이때부턴 계속 물 위에 엎드려서 편안히 유유자적 떠돌아다닐 수 있었다.
다만 친구가 일로와봐 저기가자 빨리와 라면서 부를 때마다 이녀석을 찾지못해 물밖으로 머리를 내미느라 숨찬 상황이 있긴했다. 물 속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건만 좀 멀리 떨어지면 친구의 발끝조차 보이지 않을만큼 시야가 좋지 않았다는게 문제다.
스노클 입에 물고 말도 못하고 기껏 고개를 내밀고 말할때는 이녀석은 이미 다시 물속에 들어갔고… 정말이지 텔레파시로 내상황을 전달하는 기술이 뭔가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몸이 고달프고 숨넘어갈것같을땐 동남아 산호군락 아름다운 물고기고 뭐시기고간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역시 뭐든 안전이 최고 우선이다.
어릴적부터 수영을 그렇게 잘하던 친구도 정식으로 수영을 또 배우기도 했다는데 스노클링도 편안히 숨쉬며 물고기 구경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보다는 역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연습하며 경험을 쌓는게 좋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했고 이제 물고기 구경만 하면 될일이었다.
필리핀 사방 앞바다 산호초 군락의 물고기들
물속에너 사방 천지가 산호초였고 열대어 떼였다. 우린 물속에서 서로에게 말은 못하는 대신 손가락질을 해대며 ‘이 물고기봐, 내가 찾은 물고기가 이렇게 신기하고 이뻐!’ 라는듯이 서로의 시선을 재촉했다.
말미잘은 많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숨은 작은 귀여운 물고기와 너풀거리는 지느러미를 갖진 라이언 피시도 있었고 색이 선명한 나비고기 비슷한 녀석도 돌아다녔는데 내가 물고기의 이름을 잘 몰라 아직도 누가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친구가 누구랑 얘기하건 다이빙얘기만 했다하면 박스피시 얘기를 종종해왔는데 이날도 물속에 있었다. 친구에게 그 물고기 여기 찾았다며 내가 자랑질을 하는데 친구는 후레시 비추며 눈길한번 주고 슥 지나가는 모양새였다.
물속에선 표정도 가려지고 의사소통도 안되니 좋다는 건지 어쨌다는건지 알 수 없어서 마치 학창시절 반친구를 짝사랑한다는 애 옆자리에 앉혀 놓았더니 수줍어 막상 반응은 시원찮은 걸 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열대어 중에 배너피시(Bannerfish) 종류의 물고기가 맘에 들더라. 열대어를 대표하는 어종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엔 Moorish Idol(무리쉬 아이돌, 깃대돔) 처럼 색이 진한 녀석들이 더 좋다.
얼마 후 친구가 랍스터를 찾았다며 와보랜다. 기껏 성인키의 깊이도 안되는 곳에 랍스터가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해서 그말을 듣고 단숨에 헤엄쳐갔다. 하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 쯤엔 이미 산호사이 구멍으로 꼭꼭 숨어버려서 후레쉬로 이리 비추고 저리 비추어봐도 수염끝만 살짝 보일 뿐이었다. 필리핀에 많다는 타이거 랍스터였으리라.
내 시선을 빼앗은 이름 모를 바다 물고기
다이빙하는 친구도 처음보는 물고기라고 했는데 이 녀석들 열마리 정도가 스쿨링(뭉쳐다님)을 하고 있었다. 색깔은 흑백패턴으로 단순했지만 유유자적 스쿨링하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
이것도 Schooling Bannerfish(스쿨링 배너피쉬) 같은 종류같았는데 위 아래 지느러가 체고보다 높아 전체 모습이 상하 대칭을 이루었다. 지느러미가 더 큰 개복치같달까? 그러면서도 늘씬하고 비늘엔 패턴이 그려져있었다.
정확한 이름을 알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기 어렵다. 아마도 배너피쉬 종류 중에 하나에서 유어기(Juvenile) 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헤엄쳐 다닌다기보다는 마치 수중에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수영을 하는 건지 마는건지 유영속도도 여유만만 느리고 몸 움직임이 적었는데 마치 누군가 수중에 띄워놓은 연을 날리는 걸 보는 기분이다.
몸에 그려진 패턴때문인지 개별 개체의 움직임은 주의깊게 봐야만 보였다. 그것들이 스쿨링하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매직아이 보듯이 기분이 묘하면서 비현실적인 생명체의 움직임을 보는 것 같더라. 아, 이런것이 포식자로부터의 보호행동이구나 싶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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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느린 속도로 떠돌아다니는 것같더만 잠시 한눈 판사이에 저멀리 헤엄쳐 멀어져버렸다. 굳이 쫒아가지 않더라도 그녀석들 말고도 볼 물고기는 많았다.
여자에게서 등돌아 그렇게 튕겨봤자 나도 아쉬울 것 없으리라 생각했던 다음날 밤 그녀가 다시 생각 나는 것처럼 나는 지금 그 물고기들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떠올리고 있다.
같은장소에 가면 그 때 보았던 어여쁜 아가씨를 또 마주칠까 싶은 남자의 마음처럼 그렇게 또 다시 바다를 찾아가게되는 게 다이버의 마음일까 싶다. 설령 다시 조우하지 못하더라도 막상가면 또다른 매력을 가진 대상에 매료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또한 난 알고있지.